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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인터뷰

[인터뷰] 펜싱 전은혜 "이번 올림픽 은메달은 금메달을 따기 위한 과정"

2024 파리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후보 선수'에서 '특급 조커'로 거듭난 전은혜

미담타임즈 김교환 기자 | 지난 2024 파리 올림픽이 세계인들의 축복 속에 8월 11일 막을 내렸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짧은 17일간의 시간이었지만 이번 올림픽은 극적인 장면들을 유독 많이 남겼다. 그중 하나가 펜싱 종목 세계 최강이자 종주국인 프랑스를 꺾은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 경기다. 

 

윤지수(31), 전하영(23, 서울시청), 최세빈(24, 전남도청), 전은혜(27, 인천 중구청)로 구성된 한국 펜싱 여자 사브르 대표팀은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사상 첫 은메달을 획득했다. 대표팀은 준결승전에서 프랑스를 45대 36으로 제압하고 결승에 올라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선전을 펼쳤지만 3점 차이로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세계 랭킹 1위 프랑스를 상대로 한국 펜싱의 저력을 세계에 보여줬고, 한국이 올림픽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은메달이라는 역대 최고 성적을 갱신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박수받을 만하다. 

 

한국 여자 펜싱 여자 사브르 대표팀이 은메달을 획득하기까지 숨은 공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이번 올림픽을 통해 '특급 조커'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 은메달리스트 전은혜 선수를 지난 15일 만났다. 

 

-우선 값진 은메달 정말 축하드린다. 첫 올림픽에 출전한 소감은 어떤가?

 

"이번이 첫 올림픽 출전이었는데 노력한 만큼 좋은 성과가 나서 기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한 번 정도는 메달을 못 딸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일단 올림픽에 출전한 것만으로도 너무 큰 영광이었기 때문에 가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메달을 따서 너무 좋다!"

 

-준결승전에서 첫 출전을 했는데 공교롭게 세계 1위 선수(사라 발저)와 2위 선수(마농 브뤼네)를 맞닥뜨렸다. 그때의 심정은 어땠나?

 

"나는 처음부터 주전이 아니라 후보 선수로 있었다. 언제 투입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항상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계속 훈련을 했고 세계 최강자들을 마주했을 때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출전에 대한 대비를 계속 해와서 언제든 경기에 투입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등과 2등 선수를 만나서 개인적으로는 영광이었다. 하지만 전혀 질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브뤼네 선수와의 경기에서 5점을 먼저 실점했을 때, 내 스스로 '할 수 있어, 자신있게 하자'고 주문을 걸었다. 그렇게 하니까 신기하게도 5점을 따라가서 동점을 만들 수 있었다. 후회 없는 경기를 했다." 

 

-평소 체력과 멘탈 관리는 어떻게 했나?

 

"올림픽을 앞두고 체력 훈련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기본적인 달리기 훈련을 중심으로 했고, 펜싱 훈련보다도 뛰기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던 것 같다. 펜싱 종목 중 여자 사브르가 기대가 제일 낮은 종목이었다. 왜냐하면 여자 에페랑 남자 사브르가 워낙 잘하다 보니까. 그래서 오히려 더 우리가 ‘진짜 한번 해보자’ ‘우리가 할 수 있다’ ‘한번 보여주자’ 이런 마음을 먹게 된 것 같다. 선수들끼리 많이 뭉치고 계속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기대를 안 하니까 오히려 오기가 생긴건가?

 

"'우리에게 큰 기대가 없으니까....' 풀이 죽은 게 아니라, 오히려 부담이 덜해서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우리 선수들 4명 모두 그렇게 느꼈다."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우리가 세계 랭킹 1위인 최강 프랑스를, 그것도 4강에서 만났다.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프랑스가 결승에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올림픽 전에도 여러 경기를 했지만, 프랑스를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그래서 올림픽에서 프랑스를 만났을 때도 ‘우와’ 했는데, 4강에서 프랑스를 이기니까 정말 ‘우우우와’ 했던 것 같다. 결승에서 우크라이나에게 패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아쉽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프랑스를 올림픽에서, 그것도 홈에서 이겼다는 사실에 정신이 없었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갔다. 정말 몸이 떨릴 정도였다. 결승을 준비해야 하는데, 밥을 먹으려고 해도 손가락이 떨렸다. 우리 넷이 모여서 밥을 먹으려는데, ‘나 밥을 못 먹겠어’ ‘언니, 저도요. 밥이 안 넘어가요’ ‘저 지금 온몸이 떨려요’ 이렇게 말하며 결국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웃음) 프랑스를 이긴 순간이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준결승전에서 본인의 경기를 전은혜 선수에게 양보한 맏언니 윤지수 선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윤 선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펜싱 단체전에서는 후보 선수가 주전으로 투입되면, 그다음 경기부터는 그대로 쭉 이어가야 한다. 다시 바꿀 수가 없기 때문에, 후보 선수를 언제 투입할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남자 사브르 팀 같은 경우, 후보 선수를 마지막 결승전에 투입했는데, 이렇게 후보를 어느 타이밍에 활용할지 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윤지수 언니는 필요한 순간에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준다. 언니가 먼저 "네가 뛰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해주었다. 자기 욕심이나 자존심 때문에 먼저 말을 꺼내기 어려울 수도 있었을 텐데, 언니가 먼저 이야기를 해준 것이 정말 고마웠다. 그런 상황에서 "언니, 제가 뛸게요"라고 선뜻 나서기도 어려웠다. 나는 후보였기 때문에, 먼저 말하면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까 고민도 됐다. 그런데 언니가 먼저 얘기해준 덕분에, 부담 없이 첫 출전을 할 수 있었다. 언니가 그때 혼자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결승에 올라갈지 안 올라갈지 모르지만, 내가 너무 늦게 결승 피스트를 밟으면 몸이 경직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말 고마웠다."

 

-국가대표가 되고 난 뒤 어려움은 없었나?

 

"난 사실 24년도 국가대표팀 선발에서 떨어졌었다. 그래서 국제 시합은커녕 올림픽도 더더욱 못 나가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속팀에서는 나를 국제 시합에 계속해서 내보냈고, 사비까지 들여 시합을 나갔다. 그러다 올해 초 튀니지 국제 대회에서 처음으로 개인전 8강을 간 거다. 그것 때문에 랭킹이 확 오르면서 기적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고,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간절히 원했던 대표팀에 가까스로 들어왔지만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힘들었다. ‘내가 이 고생하려고 여기를 들어왔나’ 싶을 정도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한계가 왔다. 힘들게 들어왔는데 훈련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여기를 도망치고 싶더라"

 

-어떻게 극복했나?

 

"내가 힘들 때마다 코치님이 멘탈을 잡아줬다. 내가 “너무 힘들어요”라고 푸념을 늘어놓으면 코치님은 “은혜야, 네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생각해 봐. 좀만 힘내. 할 수 있어!” 이렇게 계속 얘기를 해주셨다. 시간이 지나서 한 번 더 힘들다는 소리를 했을 땐 다른 답을 해주시더라. 코치님은 “네가 힘든 걸 보는 게 더 힘들어. 네가 정말 아프고 힘들면 대표팀에서 나가도 괜찮아”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청개구리처럼 “아니에요, 코치님. 저 할 수 있어요!”라고 다짐하게 됐다. 감사하게도 소속팀 코치님도 대표팀에 함께 합류하셨고, 내가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 해서 흔들리고 고된 훈련으로 지칠 때마다 코치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코치님께서 내 마음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웃음)."

 

-펜싱 경기를 재미있게 보려면 어떤 부분에 주목하면 좋을까?

 

"펜싱 경기를 재미있게 보려면 룰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사실 룰을 잘 모르면 경기를 보면서 상황을 구분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룰을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펜싱을 경험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펜싱을 더 잘 이해하고, 경기를 더욱 재미있게 즐기려면 직접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거다. 아쉬운 점은, 펜싱을 잘 모르는 분들이 경기를 보면서 이 사람이 이겼다고 생각했다가 실제로는 지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그래서 펜싱을 한번 경험해보고, 룰을 숙지한 다음 경기를 보면 훨씬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을 거다."

 

-펜싱의 매력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펜싱의 매력은 경기의 긴장감과 예측 불가능성에 있다. 경기가 시작될 때 심판이 ‘알레Allez(시작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라고 외치면, 선수들은 서로 무엇을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경기를 시작한다. 마치 가위바위보를 할 때 상대방이 어떤 걸 낼지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상대가 '가위'를 낼지, '바위'를 낼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바위'를 내서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그런 긴장감이 있다. 그래서 펜싱은 상대방의 움직임에 따라 내가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상대를 찌르고 득점이 들어갔을 때 느끼는 그 짜릿함, ‘아, 이거지!’ 하는 쾌감이 펜싱의 큰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국내 펜싱 팬들과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내 최종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이다. 이번 은메달은 다음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메달이 가지는 의미는 모두의 힘이 합쳐진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펜싱을 잘 할 수 있게끔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부모님, 힘들 때마다 멘탈 관리를 해준 코치님, 나를 믿고 피스트에 올라가게 해주었던 동료들, 그리고 대한민국 펜싱팀을 응원해준 국민들 덕에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이 모든 분들의 목에 이 메달을 걸어드리고 싶다. 4년 후 LA올림픽에서도 멋지게 활약할 펜싱 사브르 팀을 끝까지 눈여겨 봐달라!"

 

▶전은혜

 

1997년 대전 출생. 초등학생 시절에 육상을 하다 교장 선생님의 권유로 대전매봉중학교에서 펜싱을 시작해 대전 송촌고, 한국체대를 졸업했다. 인천 중구청 소속으로, 2022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 단체전 동메달, 2023년 밀라노 펜싱 세계 선수권 대회 단체전 동메달,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냈다.